마음을 담다

Aria gallery, Daejeon, Korea
01 May - 31 May 2022

나에게 있어 세필 행위는 정적과 고유의 세계에 실재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 전형주



전형주
전형주 작가는 캔버스 전체 공간을 단 한 가지 조형적 방법으로 표현한다. 필치나 필력이란 말이 있듯이 붓의 사용법에 따라 그림의 맛과 형식이 달라지기 마련인데, 작가는 주로 1호나 2호 정도의 작은 붓을 사용해 몇 천, 몇 만 번이고 고른 붓질을 반복해서 화면 전체를 메운다. 그러한 방법으로 드러나는 이미지는 규모나 형태면에서 다른 다양한 개체들임에도 불구하고 균일한 비중을 갖게 한다. 즉 유화가 가질 수 있는 특유의 표면적 질감이나 다양한 붓터치가 품어내는 어떤 강조도 없다는 것인데, 이는 어느 한 개체에만 집중하거나 몰두하여 발생시키는 차이나 강조도 없음을 뜻한다. 다만 작가가 모든 대상에게 보내는 균등한 시선은 모든 것을 인정하며 배려한다.

그리고 균등한 개체들이 모여 있는 작가의 조형공간에는 소리가 없다. 어떠한 잡음도 들리지 않는다. 다양한 차이의 소리로 가득한 세상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 작가의 작업은 고요해서 비현실적이며 그래서 낯설다. 매일 아침 작업실로 나가 반복적으로 이루는 작은 붓칠 과정은 수행을 닮아있다. 수행의 과정이 그려내는 그의 세계는 자신이 살아온 삶처럼 고요하고 차안(此岸)과 격리된 고독이다. 피안의 이미지, 정지된 시간, 적막함과 고독, 알 수 없는 불안은 일정 부분 작가의 잠재된 의식과 정서를 반영한다. 자신만의 세계를 무수히 구축하는 그가 그 세계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끊임없는 피안에의 탐닉은 적극적인 그 무엇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비현실의 풍경 속을 배회하고 있는 이방인처럼 그의 여행도 언젠가는 끝을 맺는 그러한 종류의 것이리라. 어쩌면 고궁을 등지고 있는 여인이 고궁을 지나쳐 향해 바라보기 시작하고 있는 <  고궁산책  > (2014)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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